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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and Media 2008/05/07 23:04

중간고사가 끝난 후, 학과 익명 게시판에는 중간고사에서 컨닝을 목격한 학생의 글이 올라왔다.

 제목 이번 중간고사에 컨닝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글내용 2008.05.06 20:15:01    
 
이번 중간고사에서 교수님 눈을 피해
학생들이 서로의 답안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수님께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도 고민되네요 

왠지 대학 시험을 처음 본듯한 새내기의 말투가 묻어나오는 글이긴 하지만 교수님께 그 사실을 알려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모습에서 새삼, 나는 왜 그런 고민조차 하지 못하고 불평 불만만 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글을 읽으면서 앞으로 무수히 달릴 '개념 글'과 범인들의 자숙의 글들을 기대하였으나, 다음날 달린 한 리플에선 단순히 컨닝을 옹호하는 것을 떠나 글쓴이도 너무 정직하게 살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제목 [Re] 글쓴분을 위해서 한마디!!
  글내용 2008.05.07 12:35:13    
  
글쓴분의 억울한 심정은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분위기라 해야할까요?

글쓴분이 교수님께 가서 말을 한다고해서 뭐가 크게 바뀔까요?

잘못하다가 글쓴분의 이미지에 먹칠 할 경우가 생길 수 있을뿐

이제와서 특별한 방도는 없지 싶습니다.

외국에서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 어딜가더라도 컨닝하고

어려운 일은 요리조리 빠져나가려는 얌체,

남들이 열심히 해 놓은 것을 쉽게 얻어가려는 얌체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고발하실건가요?

제가 권하고 싶은건 너무 정직하게 살려고하지 마시고~

글쓴분께서도 어느정도 자신의 이익을 찾아 챙길수 있는 영민함을 기르세요

그리고 혹시라도 꼭 고발을 하시고 싶다면 그 친구를 고발하는게 아니라

교수님께 시험 감독을 제대로 해주십사 부탁을 하세요.

그게 더 나을 것 같네요.


20대, 아무도 정의를 외치지 않을때 정의를 외쳐야 하는 그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젊음과 패기라는 특권을 가진 그들이,

부정을 보고도 고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부조리에 편승하려고만 하다니...
 
결코 이번 총선과 대선의 결과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중고등학생이었을때는 한창 대입에 논술을 반영한다고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학원에서도 논술 연습을 하는 등 그 열풍이 꽤나 있었다. 그땐 논술에 가장 좋은 것은 신문 사설을 보는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집에서도 부모님이 매일 신문을 갖다주면서 사설을 읽으라고 하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설은 정치, 사회 문제를 다루는 섹션이었다. 안그래도 지루한 내용인데 가뜩이나 그런것에 관심도 없었던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얼마나 읽기가 싫었을까. 대충 눈으로 글씨 모양만 확인하고 바로 덮었던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 조중동으로 엮여진 언론을 가장한 정치 세력의 실재를 알게된 후, 신문을 읽으면서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항상 의심을 하면서 읽는 습관이 생겼다. 심지어 정치나 사회 기사는 본문 내용만으로 이 신문사가 조중동인지 아닌지 맞추는 놀이 아닌 놀이도 했다.

결코 한국 신문들은 멍한 정신 상태에서 읽으면 안된다. 언론 정치 세력들은 요즘 - 2MB와 삼성시대 - 들어 그 권력을 힘껏 휘두르고 있다. 그리고 우매한 국민들 - 2MB를 뽑은 - 은 조중동 기자들의 맛깔스러운 글 장난에 마약처럼 취해 놀아나고 있다.

아래의 '몸과 마음을 바쳐 삼성에 충성을 다할 것을 이건희 앞에서 굳게 다짐한 조선일보 기자의 사설'을 보면, 글의 서두에서는 삼성 특검 수사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함으로써 마치 조선일보가 정직한 언론인 척 가장 하고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1/31/2008013101645.html
 
허나 마지막 부분에서는 '삼성을 위해서나 우리 경제를 위해서나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라며 '삼성이 망하면 한국 경제가 망한다'고 믿는 한국인들 특유의 노예 근성과 거지 근성 - 우리는 삼성같은 구세주 기업이 있어야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는 나약한 존재야 - 을 한껏 자극시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사설의 마지막은 더욱 가관이다. '특검도 실속도 없이 요란하게 압수수색을 벌여 기업에 지나친 부담을 줄 게 아니라 외과수술을 하듯 정확하게 환부(患部)를 도려내는 수사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 라는 왠지 화려한 듯 하지만 껍데기 밖엔 없는 이 문장에, 최소한의 도덕적 양심과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삼성의 부도덕한 불법적 악행은 요란한 정도가 아닌 삼성을 갈아 엎는 수준의 압수 수색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테니 절대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조중동이 끊임없이 쓰레기같은 글자 모음 따위를 '배설' 하는 와중에도 언론의 양심을 지킨 신문사와 정의를 지키는 민주 시민이 있었으니 그들은 삼성의 더러운 광고가 끊긴 한겨레에 격려 광고를 싣고 있었다.

http://iandyou.egloos.com/1361987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 15권의 집필을 마치고 수백년의 로마사를 한권으로 정리한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이전에 영국 드라마 ROME을 보고 로마에 약간 흥미를 가졌는데,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모두 읽는것은 너무 무리인듯 하고, 입문서로 간단하게 읽을 책을 찾다가 발견한 책이다.

한권으로 수백년의 로마사를 써내려 가는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고, 이 책에서는 로마의 정치 체제 변화 - 왕정, 공화정, 제정 - 를 보여주고 그것과 관련된 큰 사건들과 관련 인물들을 보여준다. 특히 저자의 입장이 담긴 해설을 보고 참 괜찮은 책이라는걸 느꼈다. 역사를 단순히 옛날 이야기로 읽는 것보다는 현세에 주는 의미를 해석하는게 의미있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반을 넘기고 2/3이 지나자 저자의 독특한 정치 성향이 보인다. 저자는 로마의 공화정이 제정으로 바뀐 사건에 대해서 대략 이런 견해를 가진듯 하다.

'그리스인은 관념주의적이었고 로마인은 현실주의적이었기 때문에 로마의 정치는 원래 이래야한다(민주주의)가 아니라 제국의 상황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바꿔나간 결과가 제정이다'

게다가 결과론적으로 접근하면 제정으로 수백년이나 더 지속했다는 점. 덧붙여 카이사르 - 옥타비아누스의 제정으로 '팍스로마나(로마의 평화)'가 완성되었다는 얘기들도 그 근거로 삼고있다.

사실 이미 지나간 고대 로마의 정치가 어쨌다 왈가불가하는건 잘 모르겠지만, 저자의 뉘양스는 현대에서도 제정은 비판받아서는 안된다라는 느낌이 든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로마 제국에 대한 찬양 일색인 시오노 나나미는 마지막 한 챕터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데 '로마 영웅들의 성적'이라는것을 표까지 만들어서 점수로 매기고 잘했다 잘못했다를 얘기하고있으니 진정 로마 오덕후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책을 평가한다면 1. 로마사에 대해 간략하게 알 수 있었고, 2.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흥미로웠던 몇가지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리키니우스 섹스티우스법의 기회의 평등
로마의 정치가 바뀌는 혼란의 시대에 귀족과 평민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고 한다. 로마 공화정에는 집정관이라는 최고 권력자가 있는데, 집정관은 두명에 시민회에서 선출하지만 보통 원로원을 통해서 집정관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원로원이 될 수 없는 평민들은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보통 평민과 귀족의 대립을 해소한다면 귀족에서 한명을 뽑고 평민에서 한명을 뽑는것을 생각하지만 그런 '결과적 평등'이 아니라 로마의 모든 관직에 귀족과 평민 모두가 오를수 있도록 하는 '기회의 평등'을 마련했다고 한다.

2. 현재는 아무리 나쁜 사례가 돼 버렸다 해도 그것이 시작된 원래의 계기는 훌륭한 것이었다.
카이사르가 한말이라고 하는데, 개혁을 하는 것이 옛것 무조건 부정하는것은 아니라는 뜻이겠다. 즉, 지금의 나쁜 제도는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제도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단지 외부환경과 요인이 바뀌어서 현재에 적용할 수 없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우리 학교 컴퓨터 공학부에서는 매년 프로그램 전시회라는 대회를 연다.

이름이 전시회지 사실 공모전에 가까운 이 대회는 신청된 작품들을 학교 축제 기간에 전시하고 축제가 끝난 후 교수님들의 심사를 통해 1, 2, 3등에게 상을 주는 학과 내 대회이다.

시작한지 몇년 되지 않은 (내가 알고 있기로는 10년이 약간 안된다.) 대회인데 최근 몇 년간 대회 작품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입상의 문턱이 상당히 높아졌다.

사실 별것없는 학과 내 대회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상금이 있는 만큼 나름 경쟁이 있는 대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회 결과 발표가 끝난 후 모 선배가 프로그램 전시회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면서 이런 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xx학번 xxx입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저도 이번 전시회 때 하나 냈었습니다.
워낙 간단한 거라서 2학년만 돼도 금방 짤 수 있는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아마 보시고 이게 뭐냐고 불평한 사람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프로그램 전시회라는것의 취지는 무엇인지, 누굴 위한 전시회인지 말입니다.

태권도 학원이 있는데 하루는 겨루기 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태극권, 권투, 취권이 난무합니다.
소위 좀 한다는 애들 때문에 순진한 태권도 연습생들은 기가 죽_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있지 않았을까요.
프로그램 출품한 사람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닙니다.
다만 저는 전시회를 통해 오히려 이질감을 느끼고 낙담할 후배들이 안타깝습니다.

켄트 벡은 어느 인터뷰에서 프로그래밍을 잘 하기 위한 방법을 묻자
동작하는 작은 프로그램들을 꾸준히 만들어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링크를 찾으려고 했는데 못 찾겠네요;;)
하지만 전시회는 크고 묵직하고 뭔가 쌈박한 것이 좋다고 암암리에 종용하는 느낌입니다.

그럼 어쩌라는 걸까요.
저는 전시회에서 수상의 기준을 다변화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교육기관이 오직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한명의 승자와 수백명의 패배자를 양성하는 곳이 됩니다.
그럼으로써 계층이 형성되고 부류가 나눠집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맘에는 안들지만 학교 행정을 즉각 변화시킬 수 없으니 우리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컴퓨터공학은 정말 다양하고 심오한 분야입니다. 생각해보면 분류는 많습니다.

버그프리 프로그램 상
나이스 설계 상
좋은 냄새 코드 상
반짝반짝 아이디어 상
예쁜 UI 상
휘둥그레 신기술 상
등등
이러한 것들을 학년별로 나눠서 평가할 수도 있구요

이렇게 한다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어낸 거인 같은 프로그램은 노력상 정도의 가벼운 수상을 하겠죠. 그것을 보는 새내기, 저학년들에게 이유없는 이질감, 괴리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참여하라고 호소하는 전시회가 아니라 전시할 컴퓨터가 모자라 행복한 고민을 해야하는 것이
보다 이상적인 전시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평가 방법을 다양하게 하자는건 나름 신선한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이질감', '괴리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 또한 프로그램 전시회 수상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비록 별것 아니지만 여러 동기, 후배들이 이 프로그램이 그들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참여해왔다.

자기와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별의 별 상을 다 받으면서 그저 그런 전시회, 축제를 즐기는 것도 이 대회에 참여하는 한 방법이겠지만, 여러 수준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열의를 느끼고 꿈을 품는 그런 전시회도 좋지 않을까?

저 글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한명의 승자와 수백명의 패배자가 생긴다'라고 했다.

하지만 한두번 실패했다고 패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패배자는 이러한 실패로 낙담하고, 열의를 잃고, 노력하지 않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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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34261

온라인 서명운동으로 유명한 다음 아고라 사이트는 그저 풋내기들의 하소연장이 되어버린듯 하다.

미디어 다음 한쪽 귀퉁이에 뜬 '대학생 지하철 요금 할인해주세요'를 보고 클릭한 글.

무슨 일로 특별히 대학생을 할인해달라고 하는 것일까 해서 봤더니 전혀 내용이 없다.

그저 단순히 세계 여러나라에서 대학생을 위해 지하철 요금 할인을 해주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해야된다는 주장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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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희는 서울여대 바롬교육2 프로젝트 10조입니다

대학생 여러분들! 한 달에 교통비로 얼마를 지출하고 계신가요?
혹, 아침에 충전한 교통카드가 귀가할 때는 "잔액이 부족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나요?

저희는 바롬교육2의 모토인 "사회를 깨우자"라는 취지에서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들이 왕성한 활동 할 수 있도록 '대학생 할인제도' 도입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국가발전을 위해 대학생들에게 이뤄지는 투자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이미 시행하고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다른 외국의 경우를 봐도 우리나라에서 대학생을 위한 교통비 지원이
어느새 스리슬쩍 사라진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저희들이 할인제도에 대한 방안으로 첫째, 학생할인 정기권 도입. 둘째, 대학생 교통카드 도입 마지막으로 마일리지 적립제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학생증을 제시하면 20%가량을 할인 받을 수 있었던 할인 혜택은 '통합요금 거리비례제'의 도입되면서 사라졌습니다. 기본요금만 25%가량이 인상된 가운데, 어떠한 이유로 학생할인이 사라진 걸까요? 대학생의 사라진 권리를 이제는 다시 찾을 때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 서명을 바탕으로 서울시에 저희 계획안을 제출하려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물론 나도 대학생인 입장에서 당연히 요금이 할인되면 좋지만 이런 별 근거없고 두서없는 내용으로 지하철 요금을 할인해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인듯 싶다.


시험기간에 이런 글도 쓰는군요.

짜장면의 원래 발음은 자장면이라고 알고들 있을겁니다.

몇년전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서 울 토박이 153명 조사] 20代 ‘된소리’ 발음 심하다

서울대에서 한글의 경음화(된소리로 발음하는것) 현상을 조사해보니 나이가 어릴수록 경음화를 좋아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와있습니다.

하지만 왜 한글의 경음화가 문제되는지 나와있지 않군요.

어디선가 '사람들이 욕을 많이 하는게 한글이 점점 경음화 되어그렇다. 그래서 된소리 발음을 없애기 위해 짜장면도 자장면이라고 한다'고 들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오마이뉴스의 재미있는 글이 있군요.

국립국어연구원의 잘못된 독선 때문에 표준말이 엉망

내용인즉, 전두환이 원래 된소리인 발음을 경음으로 발음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립국어연구원의 주도로 연음화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깡패들이 소주를 쏘주나 쐬주라고 발음한다는것을 예로 들어 된소리를 사용하면 사람들 심성이 사납게 된다면서요.

즉, 국립국어연구원이 원래 된소리인 발음을 표준어랍시고 바꾼 이유는 전두환이 발음을 못해서라는 결론이 납니다.

그래서 짜장면이 자장면이 된겁니다.

뉴스에서 보는 앵커들의 표준말을 들어보면 어색한 경음이 많습니다. 그게 사실 전두환 말투였다니요.

Slashdot에 한번 놀러갔는데

글 밑에 뜨는 플래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글과 관계있는 동영상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냥 광고군요.

별로 흥미있고 재밌어 보이는 광고는 아니고 회사에서 남자와 여자가 사장 같은 사람한테 뛰어갔더니 NC소프트가 윈도우즈 서버를 사용한다는 신문 기사가 뜨는 MS 윈도우즈 서버 광고입니다.

(광고가 이렇게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과연 얼마나 많은 외국인이 NCsoft를 알아서 이런 광고가 먹힐까 하는 생각에 눌러봤죠. (아래 링크입니다.)

http://www.microsoft.com/windowsserver/compare/default.mspx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홈페이지엔 케이스 스터디 두번째에 뜹니다. 링크를 눌러 봤더니 동영상도 있군요. 그런데 재밌게도 동영상 중간에 일본 동영상이 나옵니다.

이런.. 본사에서 한국어 모르는 사람이 편집했나봅니다. 미쿸인 보기에는 한국어랑 일본어랑 똑같이 보이나보죠? 좀 어이가 없군요.

혹시 케이스 스터디에도 이상한 글 써놓지 않았을까 해서 케이스 스터디 자료까지 받아서 봤습니다.

케이스 스터디 자료는 그냥 광고군요. 약간 보니까 NCsoft가 설립 초기부터 MS플랫폼을 썼을 뿐만 아니라 지금 서버는 1000대 정도에 40테라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동시에 40만명이 접속한다고 하네요.

정말 어마어마하죠. 이쯤되면 MS가 광고 할 만 하군요.

단지 2개의 스테레오 스피커만을 가지고 완벽한 3D 사운드를 구현합니다.

(스피커보다는 헤드폰을 추천합니다.)

http://alt1040.com/archivo/2007/06/14/sonido-en-3d-con-tus-auriculares/


여러분은 루이지의 이발소에 오셨습니다.

볼륨을 높이고 눈을 감고 들어보세요.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집니다.

루이지가 당신의 머리에 봉지를 씌우기도 하고

가위나 머리깎는 기계를 갖다대기도 할 것입니다.

정말로 이발소에 와있다는 느낌을 줄겁니다.

한때 모 대선후보의 이런 비슷한 말이 이슈가 된적이 있었다.

'장애인이 아이를 가지면 낙태 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낙태 시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아이는 불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이가 불행한지 불행하지 않은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말도 못하고 어떤 표현도 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 예전의 나를 포함하여 - 이 문제에 대해 '아이가 불행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예를 들어 볼까?
 
만약 행복의 기준을 돈으로 생각하는 갑부가, 거지를 본다면 그 거지는 불행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 장애인 아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처럼 일반적으로 - 우리가 생각할 때는 거지가 꼭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진 않는다. (우리가 '돈은 행복의 기준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들어와서 그러는진 모르겠지만)

물론 그 거지의 행복의 기준에 돈이 들어간다면 거지는 불행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기 때문에 거지는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너무 일방적으로 일반화된 잘못된 말이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신체와 멀쩡한 육체가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면? 장애인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도 그들의 행복에 대해 논할 수 없다.

영화 ‘장미의 이름’은 중세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의문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윌리엄 수도사와 그의 제자 아드조는 의문사가 일어난 이탈리아 수도원에 파견되어 의문사의 이유가 악마의 소행이 아닌 인간의 소행인 것을 밝혀낸다. 도서관의 금기서를 읽지 못하도록 수도원 원장이 책에 독을 발라뒀기 때문이었다. 희생자들은 이 금기서를 읽다 독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렇다면 원장은 왜 금기서를 읽지 못하도록 하였을까? 금기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희극론이었다. 언뜻 보기엔 희극과 기독교와의 관계를 쉽게 유추해 내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원장은 어떤 이유로 희극론을 금기서로 하여 독을 발라둔 것일까? 영화의 후반부에서 윌리엄 수도사와 수도원 원장의 대화에 그 해답이 나와있다.

‘웃음이 왜 그리 두려운 겁니까?’
‘웃음은 두려움을 없애니까. 두려움이 없이는 신앙도 있을 수 없소. 악마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하느님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원장은 당시 기독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들로부터 두려움과 공포를 없애는 요소를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웃음은 공포와 두려움을 없애기 때문이다. 또한 수도사들이 희극을 읽게 되면 하나님의 '거룩함'과 '신성함'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은 금기서로 지정되었다. 원장은 죽는 마지막까지 책을 찢어먹음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한다.

중세 교회세력은 성경을 자신들만이 읽을 수 있도록 하여 교회의 권위를 내세웠으며 신은 인간이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성스럽고 거룩하며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다. ‘장미의 이름’의 수도원 원장과 수도사들도 이러한 길에 빠져있었다. 웃음은 천박한 행위이며 여자는 추악하고 여자와 접촉하는 것은 더러운 행위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죄 없는 여인이 ‘악마 숭배의 도구들’인 검은 수탉과 검은 고양이와 함께 있다는 이유로 여인을 악마로 규정하고 화형 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반전되어 ‘악마’라는 여인에게 화형을 선고한 베르나르도 귀는 죽게 되고 여인은 극적으로 구출된다.

이렇게 ‘장미의 이름’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마음대로 해석하고 만들며, 그것으로부터 잘못된 행동을 일삼고 그들의 잘못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한 중세 교회의 모순된 모습들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논점이라고 보이는 '두려움과 공포'는 비단 중세 시대에만의 얘기가 아니다. '볼링 포 컬럼바인'이라는 미국 컬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에서 주장하는 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지배 계층 - 특히 총기 협회 - 에서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어서 총을 사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의도는 지속적인 총기 판매로 자신들이 경제적 이득을 보려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에선 집 근처 마트에서 아무 문제없이 총알을 살 수 있다.)

수세기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지배를 위한 '두려움과 공포'의 막은 언제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대학내일이라는 주간지가 있다. 별로 시덥지 않은 광고 투성이 잡지라 대충 넘겨보다가 재미있는 글 하나를 발견했다. 한국인의 양심과 도덕을 그대로 반영한, 대학의 내일이 보이고 한국의 미래가 보이는 컬럼이었다.

컬럼에선 '정몽구 현대차 회장 집행유예 논란'에 대해서 대학생 몇명의 의견을 물어봤는데 포스텍과 세종대 학생의 의견이 가관이다.

02. 실질적인 죄 값을 치르도록한 판결
하동헌 포항공대 기계 07
니네들 면상

우리 사회는 아직 경제적으로 탄탄하지 않다고 봐요. 그래서 이런 문제가 생기면 항상 딜레마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정몽구 회장과 같은 거대 기업인들이 회사 돈을 횡령하는 행위는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만 그 양형 방식은 조절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감옥에 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에요. 실질적인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 이번 판결에서 사회봉사명령이란 새로운 방식으로 형을 집행한 것에 주목 해야 합니다. 1조원 규모의 사회 공헌 약속에 따라 매년 1200억원의 재산을 내놓도록 했습니다. 이 판결이 오히려 재벌들에게 실질적인 죗값을 치르게 한 결정이 아닐까요?

04. 한국 경제를 위해서라면

양진선 세종대 지구환경 06

보기 싫어서 지운거다.


정몽구 회장이 내부거래를 하고 탈세를 한 죄는 인정하지만 집행유예를 선고해 회장직을 유지하게 한 것은 그만큼 정몽구씨와 현대자동차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법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어야 겠죠. 일각에선 ‘유전무죄' 이야기도 나오긴 합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우리나리의 현실을 바라볼 때 무조건 구속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가 구속됨으로써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면 더 힘든 사람이 많아지지 않겠어요? 한국사회 안에서 현대차가 가진 힘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그러므로 저는 이번 판결이 현실을 고려한 효율적인 심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섭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막장으로 만들었을까?

나는 이런 문제가 단순히 한국 정치의 시스템적인 문제 - 사법권이 정치 세력과 자본의 영향을 받는 - 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 컬럼을 통해 본 실상은 더욱 비참하고 처절했다. 이런 무전유죄 판결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주역이라 할 대학생이 이런 비양심, 비도덕적인 생각을 갖고있는 것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녕 이들의 '사회 정의'라는 것은 지하철에 나앉은 사람과 자가용 비행기 타는 회장님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것인가?

대학내일의 '정몽구 현대차 회장 집행유예 논란'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cate_news=road%20&num=173

아기들 선물을 사러 쇼핑을 가면 파란색은 남자용이고 분홍색은 여자용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색을 나눠놓은게 단지 마케팅 술수만은 아니라는 증거가 발견되었는데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분홍색을 선호하며 최소한 남자보다는 붉은 빛을 띄는 파란색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실험은 연속으로 놓여있는 색칠된 사각형 중 가장 선호하는 색에 마우스 커서를 빠르게 갖다 대도록 한 실험이었는데, 색깔은 색상, 순도, 밝기가 조절되었습니다.

실험 결과에선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파란색을 선호했는데, 여성의 경우 파란색중에서도 붉은 빛의 파란색(예를 들면 자주색)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남성의 경우 파란-초록색 계열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여성이 초록색과 빨간색을 구별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성별에 따른 노동의 분담이라는 진화론적 설명으로 풀이됩니다. 남자가 사냥을 하는동안 여자는 채집을 했는데, 바로 익은 열매와 과일들을 찾아내는 능력이죠. 또 다른 이론은 여자가 아이를 돌보는 와중 아이가 열이 났을 때 피부가 붉어지는 것을 감지하는 능력이 발달해서 라고 합니다.

이번 연구를 한 Ling은 그녀 동료들과 함께 다른 문화권과 여러 나이대의 실험을 통해서 자연성과 성장 간의 관계를 조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http://www.time.com/time/health/article/0,8599,1654371,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