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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9 02:03

누가 그들의 행복을 논할 수 있나?

한때 모 대선후보의 이런 비슷한 말이 이슈가 된적이 있었다.

'장애인이 아이를 가지면 낙태 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낙태 시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아이는 불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이가 불행한지 불행하지 않은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말도 못하고 어떤 표현도 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 예전의 나를 포함하여 - 이 문제에 대해 '아이가 불행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예를 들어 볼까?
 
만약 행복의 기준을 돈으로 생각하는 갑부가, 거지를 본다면 그 거지는 불행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 장애인 아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처럼 일반적으로 - 우리가 생각할 때는 거지가 꼭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진 않는다. (우리가 '돈은 행복의 기준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들어와서 그러는진 모르겠지만)

물론 그 거지의 행복의 기준에 돈이 들어간다면 거지는 불행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기 때문에 거지는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너무 일방적으로 일반화된 잘못된 말이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신체와 멀쩡한 육체가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면? 장애인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도 그들의 행복에 대해 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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